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승훈 베드로 (문단 편집) == 여담 == * 이승훈에게 [[천주교]]를 처음 알려주고 영세(세례)를 받게 한 인물로 이벽(세례명 요한, 1754~1786)이 있다. 원래 그는 권철신, 정약전 등과 함께 조선에서 자기들끼리 천주교를 공부하던 사람이었는데, 자료 부족의 한계를 느끼고 청나라에 가는 이승훈에게 천주교 서적 구입과 교리 수업, 영세 등을 부탁한 것. 다만 이렇게 조선 천주교의 선구자격 인물 중 한명인 그도 말년엔 천주교를 배교했다고 알려져있는데, 그 연유에는 이런 이야기가 떠돈다. 1784년 귀국한 이승훈에게 세례를 받아 정식으로 천주교 신자가 된 이벽은, 이에 갈등하던 부친 이부만이 목 매어 자살하겠다고까지 하자 어쩔 수 없이 배교한다. 버리는 방법은 "나는 천주쟁이였으나 이젠 아니다"라는 글을 써서 붙이고 일절 기도 모임에 나가지 않는 방법이었다고 한다. 다만, 이벽도 자신의 할아버지를 통해서 처음 천주교를 알게 되었으므로 이 이야기의 신빙성을 의심하는 의견도 있다. 실제 그의 배교 여부는 학자간에도 논쟁이 있다. 하여튼 이벽은 이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33살 나이로 요절하는데, [[전염병]]에 걸려 죽었다는 설부터 부친이 아들의 고집을 꺾지 못하자 정말 자살해버려 죄책감 끝에 본인도 자살했다는 설[* 90년대 소설 [[목민심서]]에 이게 나왔다.], 집안에서 몰래 죽였다는(...) 설 등 다양한 얘기들이 떠돈다. * 1791년 [[진산 사건]] 당시 이승훈은 "[[제사]]는 아버지를 [[신]]으로 믿는 게 아니고 조상에 대하여 고마워하는 것뿐"이라고 논리를 절충하였다. 이 때문에 천주교 신자들에게 비난을 받기도 했다. 조선 후기 천주교의 첫 영세자로 상징성이 높은 인물이지만, 한편으론 천주교 배교도 여러 번 한 인물이라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. [각주][include(틀:문서 가져옴, title=이승훈, version=177, paragraph=1, title2=이승훈, version2=162, paragraph2=11)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